바다 위 낭만적인 보호자

『세상 끝 등대』

곤살레스 마시아스 지음 | 엄지영 옮김

2023년 3월 1일 발행 | 양장 170*240mm

160쪽 | 22,000원 | ISBN 979-11-92674-26-1 (03980)

모든 고독한 이에게는 등불이 필요하다

기술적인 것이 곧 영웅적인 것이었던 시대의 언어, 등대

불가능했던 건축의 폐허로 떠나는 서사시적 여행

쥘 베른의 소설 『세상 끝의 등대』를 인용하며 시작하는 『세상 끝 등대: 바다 위 낭만적인 보호자』는 스페인의 작가이자 그래픽 디자이너, 편집자인 곤살레스 마시아스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손수 만들었지만, 본인이 꾸며 낸 것은 하나도 없는 등대에 관한 책이다.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등대에 홀린 작가는 세상의 모든 등대에 관한 이야기를 수집하기 시작한다. 여기에 직접 제작한 삽화를 더하고, 지표와 정보를 붙여 지도첩(atlas) 형식의 독특한 이야기집 『세상 끝 등대』를 출간했다. 사라지고 있는 것 속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이 책은 스페인 독립 출판사에서 출간한 당시, 책 자체의 독특한 형식과 아이디어, 소슬하고 세심한 텍스트로 독자와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책이 들려주는 생생한 이야기들은 독자들을 외딴 지역의 등대로 이끈다. 34개의 특별한 등대에 관한 해도(海圖), 아름다운 삽화, 흥미로운 데이터(시공 기술자, 건설 연도, 건축 재료, 등탑 높이, 광달거리, 등질 등)는 상상력이 풍부하지만 정확한 정보에 기반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먼 등대에 어떻게 닿을 수 있을까?

34개의 등대, 그리고 34쪽의 모험 이야기

서문에서 저자는 세상의 많은 등대 중 부러 덜 알려지고 닿기 힘든 등대를 엄선하여, 한 쪽이라는 제한된 분량 안에서 이야기했다고 밝힌다. 심연에 있는 풍요롭고 낯선 진주와 산호를 캐내듯 등대 이야기를 수집한 저자는 스스로에게 형식적 제약을 부여했다. 각 등대 이야기는 한 페이지를 넘기지 않을 것, 그 옆 페이지에는 등대 이미지가 놓일 것, 뒤 페이지에는 등대 관련한 데이터가,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는 해도가 놓일 것. 등대 존재 조건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자연조건을 떠올리는 정형화된 규칙 덕분에 독자들은 더욱 흥미롭고 내용에 충실한 책을 만나게 되었다. 삽화 또한 파란색과 노란색을 제한 사용하여 현대성과 독자성을 띠고 있다. 등대의 위치와 정보를 알려주는 군더더기 없는 도면과 거리감을 현실적으로 증명하는 지도는 시대도 국가도 다른 34개의 이야기를 이질감 없이 지금 이곳으로 소환한다.

먼바다를 사랑하는 방구석 여행자와 낭만적인 탐험가들을 위한 패스포트이자

문학 여정을 밝히는 세계의 등대

임종 직전까지 등대 이야기를 썼던 에드거 앨런 포, 대표적인 등대 작가 버지니아 울프, 그리고 넬슨 만델라의 불멸의 삶이 그들의 등대와 함께 등장한다. 하나같이 고독과 광기에 매료된 사람들이다. 한편 이렇게 무언가에 제대로 미친 이들의 이야기는 터져 나오는 용기와 행복의 이야기로도 읽힌다.

실제 사건을 토대로 한 34편의 이야기 중에는 우리가 처음 접하는 것들도 있다. 당시로선 보기 드물었던 여성 등대지기와 그녀의 용맹한 업적, 얼어붙은 북극을 기적처럼 홀로 지켜낸 눈먼 등대지기, 발견과 동시에 멸종된 새와 고양이의 진실, 밤마다 타자기를 쳐대는 유령 등대지기, 자신의 선박을 지키기 위해 불가능한 곳에 등대를 세워 버린 괴짜 부호 상인, 불화하는 두 등대지기의 밀실 공포증을 불러일으키는 사연 등 모두 흥미롭다. 영화와 명화, 노래가 되어버린 전설, 인문학적 고찰을 이끌어 내는 등대 이야기를 읽노라면 찰스 부코스키의 “고립은 선물”이라는 아이러니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따라서 이 책은 단지 등대의 관한 책에 그치지 않는다. 자연이라는 인간 조건에 비친 우리 본연의 모습, 극단적인 상황에서 발현되는 인간의 위대함을 탐구하는 대화로 확장된다.

◆ 차례

* 저자 서문

* 등대 지도

  1. 아지오골 등대
  2. 아메데 등대
  3. 아니바 등대
  4. 벨록 등대
  5. 부다 등대
  6. 카보블랑코 등대
  7. 클리퍼턴 등대
  8. 콜룸브레테스 등대
  9. 에디스톤 등대
  10. 엘드리드록 등대
  11. 에반헬리스타스 등대
  12. 플래넌제도 등대
  13. 거드리비 등대
  14. 그레이트아이작케이 등대
  15. 그립 등대
  16. 과르다푸이 등대
  17. 쥐망 등대
  18. 클레인퀴라소 등대
  19. 라임록 등대
  20. 롱스톤 등대
  21. 마치커 등대
  22. 마티니커스록 등대
  23. 나배사 등대
  24. 로벤섬 등대
  25. 로셰오즈와조 등대
  26. 루비에르크누데 등대
  27. 산후안데살바멘토 등대
  28. 스몰스 등대
  29. 스태너드록 등대
  30. 스티븐스섬 등대
  31. 습야토노스키 등대
  32. 틸라무크록 등대
  33. 비엘 등대
  34. 웬웨이조우 등대

* 찾아보기

◆ 저자

곤살레스 마시아스González Macías
1973년생. 스페인의 작가이자 그래픽 디자이너, 편집자.

어린 시절부터 지도에 매혹되었던 그는 2020년 직접 수집한 이야기와 제작한 삽화를 시적으로 조합하여 등대들을 향해 떠나는 지도첩 형식의 독특한 이야기집 『세상 끝 등대』를 출간했다. 독립 출판으로 시작된 소슬하고도 아름다운 이 책은 출간 즉시 만 부 이상 팔리는 등 독자와 언론의 주목을 얻으며 전 세계 14개국 번역 출간, 팟캐스트 버전 출간으로 이어졌다. 팟캐스트 버전 『세상 끝 등대』는 스포티파이, 애플뮤직에서 원제를 검색하여 찾아 들을 수 있다. 책에 다뤄진 34개의 등대 중 그가 실제로 방문한 곳은 아직까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다.

◆ 옮긴이

엄지영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과 스페인 콤플루텐세 대학교에서 라틴아메리카 소설을 전공했다.

옮긴 책으로 마리아나 엔리케스의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을 비롯해, 오라시오 키로가의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영혼의 미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까떼드랄 주점에서의 대화』, 루이스 세풀베다의 『역사의 끝까지』, 돌로레스 레돈도의 『테베의 태양』,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인상과 풍경』,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의 『계속되는 무』 등이 있다.

◆ 본문에서

이 불가능한 건축물에는 아름다우면서도 거칠고 길들여지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 그들이 서서히 죽어가는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직감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바다를 떠다니는 선박들은 더 이상 등대의 낭만적인 보호를 받을 필요가 없어졌고, 인공위성과 GPS를 통한 내비게이션, 수중 음파 탐지기, 레이더 같은 새로운 길잡이들이 속속 나타나면서 등대가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 특히 이름 없는 이들의 가정이자 일터가 되어주었다는 사실조차 잊혔다.

“성난 파도 한가운데 우뚝 솟은 거무스름한 바위는 험하고 황량했다. 이런 곳이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나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위섬 앞에서 압도당했다. 수평선에 희미한 빛이 비치는 가운데, 거대한 파도가 바위섬의 서쪽 부분에 강하게 부딪치며 하얗게 부서졌다. 그건 누구도 쉽사리 상상하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등대로 가려는 계획이 끝없이 미루어지는 일은 단지 소설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등대로 처음 부임하거나 교대하는 등대지기들이 기상 악화로 출발이 지연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1969년 8월 4일, 근무 중이던 등대지기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등대 램프의 이상 징후가 포착된 데다 반복된 무선 호출에도 아무런 응답이 없자, 비미니군도에서 구조대가 급파되었다. 섬에 도착하자마자 조사한 바로는 대부분 정상이었다. 각종 집기와 식량 등은 제자리에 있었다. 그렇지만 등대는 인기척 하나 없이 고요했고, 등대지기들의 행방 또한 오리무중이었다.

“두꺼운 유리창에 굵은 빗방울이 내리쳐 앞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고, 높은 파도가 일어 며칠이나 배가 오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굶주림에 지칠 대로 지치지만,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 이 바위섬에 있으면, 해안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마음의 평화를 느낀다. 여름에는 수백 척의 배들이 이 항구를 드나든다. 모두 내 지시를 따를 때만 가능하다. 내가 살면서 느끼는 행복의 일부는 여기에서 온다.”

넬슨 만델라, 월터 시술루, 고반 음베키, 아메드 카트라다는 교도소 점멸등 불빛을 받으며 억압에 맞서 끝까지 투쟁하기로 뜻을 모았다. 자신들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미래를 이끌 영웅이 되리라는 것도 모른 채, 그곳에 갇혀 지도자로서의 능력을 키웠다.

쥘 베른은 그곳에 있는 자그마한 등대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의 마지막 소설 중 하나인 『세상 끝의 등대』를 썼다. 놀랍게도 그 등대는 그가 살던 프랑스 도시 아미앵으로부터 만 3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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